애플의 로고를 보면 사과의 뒷면을 누가 베어 먹은 형태다. 스티브 잡스는 무슨 의미로 누가 베어 먹은 사과 그림을 애플의 로고로 삼았을까?
신자유주의에서는 비전을 큰 목표에 멋진 옷을 입혀놓은 것이라고 규정한다. 지금 있는 시점에서 목표라는 가장 근접한 미래를 향해서 일사불란하게 달려가는 것을 형상화해서 비전을 정의한 것이다. 비전 달성에도 효율성에 대한 철학이 들어가 있다.
가장 가까운 미래를 자원을 최소한으로 투입해 극단적으로 크게 달성하는 방식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목표를 비전으로 정해서 앞만 보고 달릴 경우에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시각을 놓친다는 점이다.
말 경주를 시킬 때 옆을 보지 못하도록 안대를 씌우고 경주시키는 이유도 앞만 보고 최대한 빨리 달리게 하기 위함이다. 목표로 설정한 것이 우리가 찾는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목표에 거의 도달했을 즈음 깨달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최근 아이파크 붕괴 사고를 일으킨 현대산업개발은 목표를 잘 달성하는 기업의 전형으로 알았는데 왜 이런 사고를 일으켜서 회사의 존망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가져오게 했을까?
주가는 미래가치 달성에 대한 믿음을 현재의 시세로 현금화한 것이라면 목표를 효율적으로 잘 달성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삼성전자의 주가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을까? 삼성전자는 왜 미래가치를 만드는 데 실패했을까?
다시 애플의 로고로 돌아가서 사과를 놓고 이것을 얻기 위한 목표로 경주할 때 이 사과의 뒷면이 누가 베어 먹은 사과인지 아니면 진짜 온전한 사과인지에 대한 진실을 보지 못한다. 목표를 비전으로 설정한 회사의 가장 큰 함정이다. 목표를 비전으로 설정한 회사의 함정은 이 사과를 선악의 기준으로 삼고 누구든 이 사과를 먹지 말라는(의심하지 말라) 경고를 보낸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회사의 목표와는 다른 목표를 가진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색출해서 단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과의 앞면뿐 아니라 뒷면도 볼 수 있는 안목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스티브 잡스는 Looking Backward 방식으로 찾아낸 비전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와 목표의 궁극적 미래, 즉 회사가 100년 기업이 되어 후세에게 바통을 물려줄 때 같이 전달할 유산에 대한 약속인 기업의 존재 목적이라는 마지막 미래에서 뒤돌아서서 가까운 미래를 볼 수 있을 때 기업은 진정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미래에서 가까운 미래를 거꾸로 볼 수 있을 때 사과의 뒷면도 볼 수 있음을 설파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비전이란 최고로 먼 미래인 존재 목적에서 시작해 가까운 미래, 현재, 과거의 점이 연결되는 점의 연결(Connecting Dots) 내러티브를 구축한 사람들만 사과의 뒷면도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다고 설파한 것이다.
이런 내러티브를 구축해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으로 존재 목적을 설명하는 가장 먼 미래에서 가까운 미래를 생각했을 때 연결되어야 하는 점을 찾아서 브리징(Bridging)하는 과정을 혁신이라고 생각했다.
스티브 잡스의 스마트 폰의 개념은 지금 있는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를 보는 방식은 Looking Forward가 아니라 애플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주는 가장 먼 미래에서 가까운 미래를 점으로 연결하여 찾아낸 것이다.
개념이 장착 되자 이것을 비전으로 만들어서 제시했고 이에 동참한 엔지니어, 종업원, 투자자들을 스마트 폰이라는 개념을 실제로 만드는 협업에 동원해서 결국 스마트 폰을 만들어내었다.
대부분 글로벌 기업에서의 혁신 프로세스는 목표지향적인 Looking Forward 방식을 넘어서 목적에서 미래와 현재를 연결하는 Looking Backward 비전 실현을 통해서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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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마존에서 일하는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는 원리인 최종 고객의 통점의 시각에서 현재 자신들이 하는 일을 거꾸로 보는 방식도 Looking Backward 방식이다.
Looking Backward 방식이 통용되기 위해서는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전문성 영역을 구축하고 있어야 하고 이 전문성 영역을 중심으로 회사의 공동 존재 목적에 대해서 찾아내고 이것을 현재의 과제로 가져오게 하는 협업의 과정이 가동되어야 한다.
각국에 흩어져 있는 천체 물리학자들이 각자의 나라와 지점에서 자신의 천체 망원경들을 결합해 우리가 볼 수 없었던 블랙홀의 실체를 볼 수 있게 만들었던 원리도 협업의 원리다.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가설에서만 존재하던 블랙홀을 실제로 볼 수 있게 만든 것은 가설적 존재 목적을 모든 구성원의 전문성이라는 천체 망원경을 동원해 협업으로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의 협업이 아닌 경영자의 독자적 통찰력만으로 사과의 뒷면도 볼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오래전 과거이다.
블랙홀은 모든 기업이나 국가 개인들이 염려하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화두를 함축한다. 블랙홀이 우리에게 번성을 위한 기회일 수도 있고 생존의 위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 미래에서 우리를 보게 만드는 목적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블랙홀을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성원을 일사불란하게 앞만 보고 달리게 만든다면 블랙홀이 위기로 현실화하여도 이것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잃는다. 붕괴 사고를 일으킨 현대산업개발이나 미래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대표적 사례이다.
일이 다 끝난 후 경영진에게 사후 약방문식으로 책임을 묻는다고 이 두 회사가 지속가능성을 달성할 수 있을까?
진정한 의미의 비전은 자신의 가장 먼 미래에서 미래, 현재, 과거가 연결되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자기 삶에서 놓치고 있던 기회와 위기를 같이 보는 시각을 의미한다.
가장 먼 시간인 존재 목적의 시각으로 밖만 보고 달리던 자신을 안에서도 보고(Inside out) 밖에서도 볼 수 있게(Outside in) 만드는 것이 비전이다. 비전의 가장 큰 힘은 부분적으로만 보던 자신을 안과 밖뿐 아니라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전체적이고 통시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회복하는 것이다. 역으로 자신을 보지 못한 사람은 비전을 잃은 사람들을 상징한다.
“네 자신을 알라”고 설파한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눈은 있어도 비전을 상실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삶에 대한 경각심으로 철학의 문을 열었다.
글: 윤정구 이화여대 교수
출처: http://www.itnews.or.kr/?p=36274